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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모궁의궤> (사진제공: 장서각 연구소) |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BNF)에 소장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고국의 품에 돌아온다. 1966년 병인양요로부터 꼬박 145년 만이다. 14일 도착 예정인 1차분 50권을 시작으로 5월 31일까지 총 네 번에 걸쳐 들어오는 외규장각 도서.
외규장각 도서 가운데 ‘형지안’을 포함한 3권을 제외하고 외규장각 도서 대부분이 의궤다. 조선왕실 도서를 차지하는 비율이 의궤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소장하고 있는 의궤는 조선 왕실이 펼친 각종 행사와 의례를 기록해 놨다. 의궤에 대해 알아보자.
종류만도 20여 가지, 실무 효율성 도모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문화의 정수가 책이라면, 책 중에서도 왕실도서가 단연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의궤’는 왕실도서를 상징하는 우리의 기록 유산이다.
장서각 연구소 박용만 선임연구원은 “의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상기해본다면 조선왕조의궤의 우수성은 충분히 논할 만하다”고 말했다.
◆찬란한 기록의 꽃 ‘의궤’
의궤란 국가 의례를 행할 때 기준이 되도록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것을 말한다. 조선 왕실에서 주관한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일종의 보고서다.
의궤는 열람하는 사람의 신분과 의례의 성격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국왕이 열람하는 ‘어람용’과 대한제국기 이후 황태자를 위한 ‘예람용’, 관련 관서와 지방 사고에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선은 모든 통치와 의례, 실무에 따른 일들을 세밀하게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박 선임연구원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의궤’를 통해 찬란한 조선 왕실 문화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국가와 왕실 의례를 감안해 차후 이뤄질 의례의 궤범을 정리한 것이 의궤”라며 “이를 통해 후대에 있게 될 혼란을 방지하고 실무의 효율성을 도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록은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는 최고의 유산이다. 이처럼 ‘조선은 기록의 나라’라는 별칭과 같이 의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궤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546종 2940책,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341종 503책 등 두 기관에 대부분의 의궤가 소장돼 있다. 이외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대 도서관, 이화여대 도서관, 경남사천시청 등에도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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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 하권 (사진제공: 장서각 연구소) |
◆다양한 의례를 위해 제작된 의궤
의례는 기본적으로 오례(길ㆍ흉ㆍ빈ㆍ군ㆍ가례)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례에 속한 의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례를 위해 제작된 의궤도 여럿 있다.
오례는 종묘와 사직에 관한 의궤(길례), 국가와 왕실의 제사와 관련된 의궤(흉례),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의식에 대한 의궤(빈례), 군사 의식에 대한 의궤(군례), 왕실의 결혼과 즉위 등에 대한 의궤(가례) 등이다.
그 외에도 왕과 왕비․세자․세자빈의 승하 직후 처리 절차와 3년 동안 신위를 모시는 과정을 기록한 빈전(殯殿)과 혼전(魂殿)에 관한 의궤, 3년 상이 끝나면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에 관한 의궤 등이 있다.
조선 왕실의 의례가 다양했던 만큼 의례를 정리한 궤범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박 연구사에 따르면 그 외에도 태봉(胎封), 능(陵)ㆍ원(園)ㆍ묘(墓)와 어진(御眞)ㆍ예진(睿眞), 영접, 군사, 왕실족보의 편찬, 공신의 녹훈, 친경(親耕)ㆍ친잠(親蠶) 등 20여 가지의 의례에 제작된 의궤가 남아 있다.
특히 장서각에는 10여 종의 ‘고본의궤’가 유일하게 남아있다. 고본의궤는 의궤 제작과정에서 최종본이 만들어지기 직전 단계의 의궤다. 이는 제작과정의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의궤가 어떻게 제작됐는지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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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성황후국장도감> 의궤 (사진제공: 문화재청) |
◆“의궤 환수, 차후 반환 선례 삼아야”
해외로 반출된 의궤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 191종을 비롯해 일본ㆍ미국ㆍ영국ㆍ카자흐스탄 등에 모두 290종의 의궤가 반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최근 반환이 협의된 일본 도쿄 궁내청에 소장된 의궤는 72종에 이른다. 조선의 기록문화는 세계 강국들이 먼저 알아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연구사는 “어람용 의궤를 보면 단순히 기록을 위한 것만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람용 의궤는 최고급 종이에 광곽이나 오늘날 자의 일종인 계선ㆍ판심 등을 이용해 붉은 먹으로 정교하게 그렸으며, 비단 표지 앞뒤로 변철을 대어 국화무늬를 장식했다. 이렇듯 당시 국가와 왕실의 ‘정성’도 의궤 전반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파리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 의궤가 영구 임대 형식으로 반환되는 것이 목전의 일이 됐지만, 이번 사례도 10여 년 만에 거둔 성과다.
반환되기까지 시일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국민들이 반환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과정을 모르는 사이에 관심이 멀어지고 ‘환수 문제’라는 일시적 흥분상태로 그쳤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박 연구사는 “당장 반환되는 것보다 반환의 의미와 절차를 꼼꼼하게 따져 차후 다른 자료의 반환 선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리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 도서나 일본 궁내청 도서의 반환은 우리의 문화적 우수성에 대한 방증인 동시에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던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화재 반환은 가시적인 성과에 얽매여 서두를 일만은 아니며, 많은 문화재가 온전히 반환될 수 있는 합리적인 과정을 설정하고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반환 문화재 관련 연구자뿐만 아니라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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