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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이야기] 아름다운 꽃신 만드는 유일한 황해봉 화혜장

문화 2010/08/24 10:32 Posted by 뉴스(news) 뉴스천지

[장인 이야기] 아름다운 꽃신 만드는 유일한 황해봉 화혜장 
2010년 08월 07일 (토) 19:56:05 김지윤 기자 jade@newscj.com
   
▲ 지난달 20일 인사동에 위치한 인사아트센터에서 ‘2010 여름, 천공을 만나다’에 참여한 화혜장 황해봉 선생이 공예 시연과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공개장소에 전통공예 시연장 마련해 살아있는 전통 알려야”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가죽으로 어떻게 이리 고운 신발을 만들 수 있죠?”

전통 꽃신을 본 사람들의 공통적 반응이다. 형형색색 놓인 수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우리 고유의 멋인 곡선이 단아하게 들어가 편해 보이기까지 한다. 가죽을 둘러싼 비단과 그 위에 놓인 자수가 고와 만지기도 아까울 정도다.

수놓인 비단신을 통틀어 꽃신이라 불리지만 사실 꽃신은 화혜에 속한다. 원래 복사뼈를 감싸고 목이 있는 신발인 ‘화’와 목이 없는 신발 ‘혜’를 구분했으나 요즘은 ‘화혜’로 통틀어 부른다.

◆ 꽃신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화혜를 만드는 장인으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된 황해봉(58) 선생이 유일하다. 5대째 가업을 이은 그는 16세 때 화혜장인 할아버지 황한갑(1889~1982) 선생의 어깨너머로 화혜 공예를 배웠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 화혜 기술을 전수받게 됐다.

황 선생이 제대했을 때 아버지 역시 쉰이 넘어 늦깎이 전수자로 할아버지 밑에서 배우고 있었으나 연로한 탓에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69세에 유명을 달리하면서 전수자로서 그가 유일했다. 그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름다운 화혜를 더 이상 못 볼 것만 같아 할아버지를 졸졸 쫓아 이것저것 여쭤봤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가 대견했는지 당신의 기술과 비법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1983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화혜장의 맥은 끊기는 듯 했다. 하지만 황 선생이 1997년 전승공예대전 특별상과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히 화혜장의 길을 걷고 있었다. 조선시대 왕실 및 사대부, 기생의 신을 만들던 공예기술이 황 선생 손에 의해 올곧이 살아나고 있었다.

10년간 할아버지 밑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온 그는 옛 문헌과 복식학자의 조언을 통해 다양한 화혜를 재현했다. 심혈을 기울인 결과 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의례 때 신던 적선과 청석을 되살렸다.

황 선생에게 꽃신은 어릴 적부터 생활 자체였다. 처마 지붕처럼 둥글게 올라간 코, 고상하면서 화사한 자수로 화려함을 내뿜는 신 자체가 황 선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단다. 곱디고운 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손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그의 손가락은 굳은살이 박였다. 세월의 흔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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